청소년들의 푸른 꿈을 모은 독일 나의꿈말하기대회 열려…
독일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꿈발표제전이 4월25일 오전 10시에 프랑크푸르트 근교 마인즈시의 Jugendherberge (유스호스텔)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나의꿈국제재단 (이사장 손창현)과 재독한글학교교장협의회 (회장 이하늘)가 함께 개최하였고 프랑크푸르트 주독한국교육원 (홍성대 원장)이 후원을 하였다.
예선을 통해 11명의 학생이 본선에 참가하여 자신들의 희망찬 미래의 역할을 소개하였으며, 오페라 가수, 비행기 조종사, 그리고 노인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등 다양하고 순수한 학생들의 꿈이 전개되었다.
개회식에서 손창현 나의꿈국제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꿈을 용기를 가지고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자신의 사회의 주위를 항상 둘러보고 남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참가자들을 격려하였다. 이하늘 재독한글학교협의회 회장도 인사말에서 “독일 청소년들의 꿈을 정립하는 대회가 되어 기쁘고 많은 꿈들이 이루어지는 그런 대회가 되었으면 한다” 고 말했다. 심사위원으로 홍성대 주독한국교육원장, 진명희 협의회 청소년부 부장, 남일나의꿈국제재단 부이사장이 수고를 하였고, 심사위원장을 맡은 남일 재단 부이사장은 꿈의 발표 내용이 다양하고 한국말 실력들이 높았다고 격려를 하였다.
발표대회에 앞서 나의꿈국제재단과 재독한글학교협의회는 향후 독일에서의 청소년꿈발표제전의 계속적인 발전과 청소년들의 한국문화 사업등을 위해 서로 협력할 것을 다짐하며 업무협정식을 가졌다.
9명의 한국계 학생과 2명의 독일 학생들은 자신들의 미래의 꿈들로 열띤 경연을 벌였으며, 1등에는 음악치료사가 되어 슬픔과 고통에 잠긴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살겠다며 감정에 섞인 목소리로 호소한 피네 쿨만 학생이 수상을 하였다. 16세인 피네양은 라이프니쯔 고등학교 11학년에 재학 중이며 도르트문트 한글학교를 다니며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다. 피네양은 독일인 아버지 쿨만씨와 한국인 어머니 김미라씨 사이의 장녀이다. 2등에는 오페라가수가 되어 돌아 가신 아버지를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고 발표한 장은비 학생과 노벨과학상을 받아 우수한 한국인을 알리겠다고 발표한 박성민 학생이 수상을 하였다. 3등에는 김충년학생과 독일인 베커 리나 학생이 수상을 하였다.
1등에서 3등까지의 수상자는 나의꿈국제재단의 장학생 선발에 응모할 자격이 주어지고 1등을 한 피네 쿨만 학생은 다른 나라에서 1등 수상한 학생들과 함께 재단의 심사를 통해 선정이 될 경우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나의꿈국제재단의 나의꿈갤라(My Dream Gala)에 초청을 받게 되고 항공료와 여행비를 전액 지원 받게 된다.
대회 후 총평에서 손창현 이사장은 참가 학생 모두 한국어 실력이 상당하고 상위권 수상자들은 세계 어느 대회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꿈과 발표 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으며 지속적인 대회와 수상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월드코리안
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13928
제공자 : URI-News
1등 피네쿨만 학생과 오른편 손창현 이사장 왼편 남일 부이사장
업무협정식을 하는 손창현 재단 이사장과 이하늘 협의회 회장
왼쪽부터 남일 부이사장, 이하늘 회장, 2등 박성민, 2등 장은비, 손창현 이사장, 진명희 청소년부장, 홍성대 교육원장
3등 수상자들과
장려상 수상자들과
1등 작품
치유자의 꿈
피네 쿨만
점점 학년이 높아갈수록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나의 꿈은 무엇인지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저에게는 좀 특이한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쉽게 그 사람들의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입니다. 그리고 자주 그 사람들의 감정이나 고통, 아픔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언젠가 학교 수업 중에 선생님이 책를 읽어 주었는데,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가족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얼굴이 빨개지고 화끈거렸습니다. 실제로 열이 나며 땀도 나고 숨 쉬기가 힘들어졌는데, 선생님이 저를 보시더니 놀라시며 밖에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마치 제가 사막에서 헤매는 그 아이처럼 되어서 저의 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최근에는 도르트문트에 있는 박물관에 갔는데, 이 박물관은 나치시대에 사용되었던 감옥으로써 나치에 대항하였던 사람들과 신체장애자들 그리고 유대인들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들으며 보고 있었는데, 15분쯤 지났을 때 저는 벌써 얼굴이 하얗게 되고 어지러워서 쓰러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억울하게 갇혀서 힘들었던 사람들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설명을 하던 안내원은 저를 보고는 몸이 좋지 않냐며 밖으로 나가서 쉬라고 했습니다. 밖에 나가 20분 정도 차가운 겨울공기를 마시고 나자 좀 괜찮아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들어왔는데, 2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다시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가 없어서 저 혼자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엄마가 눈이 아프다고 하시며 눈을 뜨기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 엄마의 눈을 보는데, 그 순간 엄마의 눈의 고통이 제게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엄마의 눈이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저에게는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럴까하며 너무나 힘들고 괴롭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힘들고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들의 힘들었던 상황과 아픔이 느껴지고 저의 몸이 반응합니다. 저는 저의 이런 민감함이 싫습니다. 제가 일단 힘들어서 싫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느끼는데도 아무런 위로나 도움이 되어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 슬퍼집니다. 또 그런 고통을 느낄 때 저 스스로도 그 고통에서 금방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나는 왜 이럴까 하며, 제가 싫어지기도 합니다. 저의 이런 점은 사실 단점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점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장점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해서 여러 악기를 배우고 있는데, 음악을 통한 치유에 대한 관심이 생깁니다. 또 심리학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나 고통을 좀 더 잘 느끼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잘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그 방법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